가라앉은 도시를 메우는 무거운 공기. 한참을 비가 내리던, 그렇게도 외롭게 내리던 흑백의 어느 날입니다. 유리창에 부딪혀 스러지는 빗방울의 소리를 가만 들으며 생각합니다. 곧 세상이 잠겨 무너질 것만 같은, 그러한 우울함이라고.
문득 아까 사람들이 말하던, 그 숨죽여 하던 이야기가 당신의 기억을 스쳐갑니다. 사흘 후 있을 명성있는, 부유한 귀족 가문의 결혼식. 그래요, 해리의 결혼식이요. 철저하고도 계략적인, 가문만을 위한 정략결혼. 흔히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고보니 해리가 한 번이라도 그의 약혼자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던가요. 아니, 언젠가 당신이 물었던가요. 그는 분명 답했습니다. 그도 그의 약혼자를 알지 못한다며. 그 얼굴에는 싫은 기색이 잠시나마 비친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정녕 그 뜻에도 없는 결혼을 해야만 하는 건가요.
-
아니, 아니에요. 당신은 분명히 들었습니다. 듣자마자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던 그 말을. 그들이 말하던, 그 낮은 목소리를.
‘해리의 약혼자가 살해당했다.’
그 소문과도 같은 한 마디를 당신은 들었습니다. 그저 뒷거리에 떠도는 소문이지만, 그 한 마디가 뇌리에 계속하여 맴돌기만 합니다. 소문은 괜히 나는 법이 없기 마련입니다. 특히 그런 종류의 소문은 말이에요.
그렇다면 해리는? 그의 결혼은 없던 일이 되는 건가요? 진정 그가 결혼을 할 수 있나요? 정말로?
……아니, 당신이 그걸 신경쓸 이유는 없죠. 비가 오니 잡다한 생각도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이에 대해 어떠한 감상을 품던 간에,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다시금 혼란스러이 쏟아지는 빗소리의 잔향에 생각을 맡깁니다. 약혼자의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하는 결혼이 가당키나 한가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야 높으신 귀족의 일이니까요. 당신같은 평범한 사람은………
…끼익, 경첩이 맞닿는 소리와 함께 추락하는 빗소리가 더욱 크게만 들려옵니다.
[검은 로브]:“…”
순간 맞닿은 그 커진 빗소리에, 공기의 습도에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문을 열고 한 사람이 서있습니다. 얼굴을 가린 로브 탓에, 어두운 날씨 탓에 그림자가 져 그 얼굴은 잘 볼 수 없었습니다만, 비 탓에 젖은 옷에서 물방울이 바닥으로 흐르는 모양에 묘한 낯설음이 듭니다. 그가 무엇인가를 들고 당신에게로 향합니다.
툭, 소리와 함께 책상에 한 장의 종이, 그리고 작은 케이스 하나가 놓여집니다.
손님인줄 알았건만, 의뢰인인 걸까요? 그래요, 그에게 무슨 일이 있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간에.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면, 삶을 살면 되는 것이라고.
이번에 죽음으로써 당신의 삶을 연명하게 해줄 자는 누구인가요. 흘긋 그 어두컴컴한 인영을 바라다 보곤, 비로 인해 눅눅해졌을 의뢰서를 바라봅니다.
의뢰인의 이름도, 내용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순백의 의뢰서가 청첩장마냥 느껴집니다. 그 살의를 담았을, 오래된 핏자국과도 같은 검은 글씨를 찬찬히 훑어내려 갑니다.
……순간 시야에 들어온 익숙한 이름에 숨을 멈춥니다.
해리? 당신의 손으로 죽여야 할, 그 이름이 당신이 아는 그 이름이라고요? [SAN 0/1]
Naomi Schwimmer :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쯧.
[검은 로브]:...
느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잠시나마 시선이 멈추던 것을. 그 시선을 거두어 당신에게 의뢰서를 내민 그 손을, 그 어둠에 가린 얼굴을 봅니다. [관찰 판정]
Naomi Schwimmer :
Spot Hidde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림자의 끝으로 보이는, 묘하게 웃는 것만 같은 저 입가.
얼굴을 타고 흘러 툭,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 비를 맞은 탓일까요. 아니, 그러기엔 이 곳은 비가 내리지 않는걸요.
그렇게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는, 당신이 뭐라 할 틈도 없이 그가 뒤돌아 나갑니다. 어쩌면 도망치듯, 다시 빗속으로 걸어갈 테지요.
저벅저벅, 탁. 빗소리와 함께 잠시나마 커진 그 발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정적. 그래요, 이건 당신의 일이니까. 목표물에 있어서 어떠한 감정도 가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세계에서 중요시하는 법칙이니까요.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든 간에…….
곧 천둥이 칠 것만 같습니다. 문득 손에 차갑고도 딱딱한 촉감이 와닿습니다. 의뢰금이라던, 그것. 작고도 작은, 검은색의 케이스. 손으로 그것을 집는 순간, 복잡하도록 수많은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가 누르는 것마냥 무겁게도 닫힌 케이스를 슬 열자, 반짝, 어둠 속에서 약하게나마 새어나오는 빛이 너무나도 소름돋게 아름답습니다.
바깥이 한 층 더 어두워 집니다. 온 몸의 감각이 집중되는 것만 같은 느낌. 그 빛을 온전히 그 어둠 속에서 꺼내야 겠다고 생각했을 그때,
……대기실을 빠져나와 마주한 곳은 라운지입니다. 걸쳐져 양 옆으로 묶인 커텐, 그 뒤로 바깥이 보이도록 크게 창문이 여럿 달린 흰 벽이 한 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낮의 거리의 풍경이, 그리고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검푸르고도 어두운 숲이 환히 보입니다. 벽마다 고풍스럽게 장식된 문양, 장식용으로 놓인 희고 아름다운 리시안셔스 다발. 결혼식이라면 있을 희고 흰 것들. 그런 것 따위가 걸음마다 눈에 스쳐갑니다.
슬 당신을 이끄는 발걸음이 느려지나 싶더니 그가 뒤를 돌아 당신을 봅니다. 그 당황했던 얼굴은 어디가고 그새 차분해진 얼굴입니다.
그를 쳐다보자 할 말을 찾는듯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입을 엽니다.
Harry Coleman:…나오미, 그 사람이랑 무슨 말 했어?
나오미:? 누구.
Harry Coleman:방금 봤던 시녀장, 이벨린.
나오미:별 말 안 했어. (사실 했다. 그것도 꽤 예의 없는 소리를. 그러나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듯.)
대화 소리, 웃음소리,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 잔이 맞부딪히는 소리. 여기저기 놓인 흰 꽃다발. 역시나 정장, 드레스 차림의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눈대중으로 세보자니 서른 남짓한 숫자입니다. 호화로운 결혼식치고는 숫자가 적네요. 전부 같은 귀족, 그중에서도 일부인 걸까요.
아……… 조용히 있기엔 너무 시선을 끄는 옷이었던가요……. 그야 결혼식의 주연이 입는 옷이니 당연하지만.
뭐가 즐거운지 무어라 마주 보며 웃고 대화하다간 문득 시선이 이쪽을 향합니다.
그 시선은 당신을 향하고는, 까딱, 하고는 가볍게 인사를 해 보입니다. 그 호의적인 눈웃음과 함께요.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주변 사람을 부르는 듯,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곤 당신을 향해 손가락의 끝을 옮깁니다.
그 순간, 근처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듯, 그 낭랑한 목소리가 울립니다.
??:“어머,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
나오미:(대답 대신, 누구냐는 듯 상대를 빤히 쳐다본다.)
순간, 얼굴에 띄고 있던 웃음이 더욱더 짙어집니다.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그 정체 모를 웃음을 감추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두 개의 시선, 세 개의 시선, 아니……… 수십 개의 시선이 당신을 향합니다. 그 웃음과 함께. 그 웃음은… [심리학 판정]
나오미:
심리학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명백한 조소. 분명 느꼈을테죠. 겉으로 보기엔 분명 악의 없이 호의적일 테지만. 당신을 분명 깔보고 무시하는 듯한 그 태도.
그야 그들은 당신이 그들과 같지 않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위치의 사람인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기분 나쁘도록 수군대는 그 소리가 당신에게 와닿습니다.
그리곤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저희끼리 웃고 떠들기 마련입니다.
해리는 그들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아까부터 누군가를 찾는 눈치입니다. 그러더니 시선을 한 곳에 멈추곤, 지그시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작은 인파 속에서 여러 사람을 거느리곤 한 중년의 남성이 이쪽을 향해 걸어옵니다.
곧 그 사람과 둘 간의 거리가 가까워지고는,
Harry Coleman:……아버님.
해리가 고개를 숙여보입니다. 해리의 아버지, 그러니까 집안의 가주라도 되시는 분 같네요.
그가 짧게 해리를 바라보고는 다시 당신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잠깐의 정적. 어쩐지 당신을 미심쩍은 듯 지그시 바라보곤, 낮은 목소리와 함께 묻습니다.
Johann Coleman:“아, 자네가……”
“……자네 이름이 뭐였지?”
나오미:(시선을 피하지 않고 상대를 똑바로 응시한다. 제법 건조한... 아니. 조금 매서운가? 싶지만 어조만은 의외로 공손하다.)
나오미입니다. 성은... 뭐, 곧 콜먼이 될 테니.
Johann Coleman:" 아하하, 그건 그렇군. 그래,..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
??:“요한, 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요?”
Johann Coleman:“아아,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네만…….”
??:“그렇겠죠, 빨리 가요. 시간 끌고 있기엔 아까운걸요.”
Johann Coleman:“그렇지, 어서 가세.”
당신의 옆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해리. 별 볼 일 없다는 듯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여인들의 웃음소리만이 흩어지듯 귓가에 남습니다.
그 소리가 온전히 멀어지자 해리가 슬 고개를 듭니다. 그저 그의 아버지가 있었던 자리만을 바라보는 채로. 곁눈질로 바라본 얼굴, 그 눈엔 타들어 가듯 증오가 서려 있었습니다.
순간 방금까지 보았던 눈빛의 분노는 어디 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금 당신을 돌아보고는 말을 건넵니다.
Harry Coleman:“미안, 아버지가 조금 이상한 분이라……”
나오미:야. 니 주변엔 원래 저렇게 재수 없는 사람들밖에 없냐?
나 좋다는 거 보고 미친 놈인가 했는데. 이제 좀 납득이 되네. (질린다는 표정이다. 네 기색을 순간 읽고 일부러 농담조를 섞은 것도 솔직히 있다.)
Harry Coleman:이제 좀 알겠어? 나한텐 너 같은 사람이 오히려 드물거든. (재수없다니, 속이 다 시원한 기분이었다. 이래서 널 좋아했지. 새삼스러운 기분이었다.)
..아, 힘들진 않아? 어디라도 앉는게 좋겠어.
굽 있는 구두, 철저하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져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옷. 확실히 오래 입고 있기엔 불편한 옷이죠.
조금 둘러보자니 구석진 곳에 자리가 난 것이 보이네요. 아무도 신경 쓸 것 같지 않은 장소. 결혼식의 주인공과는 조금 동떨어진 자리인듯 보이지만.
해리 역시 같은 자리를 발견한건지 당신이 말을 꺼내기 전에 그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조금이라도 멎어드는 곳에서,
Harry Coleman:“앉으시죠, 아가씨.”
해리는 흰 보에 걸쳐진 의자를 빼내고는 앉으라는, 조금은 장난스런 어조의 말와 함께, 당신을 쳐다봅니다.
나오미:(참 나. 하는 소리와 함께 픽 웃고, 자리에 앉는다.)
오냐.
희고 넓은 테이블의 가운데에는 가늘고 얇은 꽃병에 담긴 흰 꽃다발, 그리고 오프너와 함께 와인이 세 병 놓여 있습니다. 아페리티프 와인인 크림 셰리, 일반적인 레드와인인 메를로 와인, 그리고 피노 누아 와인. ……그러고 보니 와인잔이 없네요.
Harry Coleman:골라봐, 종류마다 사용하는 잔이야 다르니까……. 그냥 깜빡하고 가져다 두지 않은 것 같지만.
나오미:음... 이렇게 비싸 보이는 술 취급 안 하는데.
네가 추천해 봐. 내 취향에 맞을 것 같은 걸로.
Harry Coleman:그런가.. 그럼 대충 시킬.. 아니, 사람 모이면 귀찮으니까 내가 가져올게. (익숙하게 손짓하려다 마는 꼴이 어쩔 수 없는 귀족 자제란 건지.)
잠깐 기다려줄래? (……라는 말과 함께 일어서서는, 어딘가로 향했다.)
은은하게 샹들리에가 빛나 금빛으로 물든 연회장,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여전히 사람들은 웃습니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 무어라 속삭이는 소리. 이에 묻혀 들리진 않지만요.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법한 연회장의 끝자리입니다.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자면 [꽃병], [거울]이 보입니다.
나오미:(꽃병을 쳐다본다.)
하얀 라넌큘러스가 꽂혀 있는, 얇고 긴 유리병입니다. 투명한 꽃병 속 줄기의 끝을 적시고 있는 물을 보자니, 조금은 희게 탁한 색깔입니다. 우유라도 떨어트린 것처럼 말이에요. 꽃은 희고 아름답게 피어있어요. 어쩐지… [관찰 판정]
나오미:
Spot Hidde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꽃병에 담기고 조금, 아니,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꽃향기는 생생하게만 느껴져 방금 꺾은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잠깐, 자세히 보니 꽃받침, 그리고 줄기 일부분이 샛노랗고 뻣뻣하게 말라 있어요. 시간이 지남으로 수분이 다 빠져나갔다는 듯이.
나오미:(이상하네. 다른 건 더 볼 게 없나?)
조금 더 들여다보지만 틀별할 건 없어보입니다.
나오미:(거울로 시선을 옮긴다.)
벽의 한 면을 차지하는 큰 거울입니다. 거울에는 연회장의, 그리고 그 바깥의 모습이 비춥니다.
저 멀리서 흐릿하게 해리의 모습이 보이네요. 연회장의 바깥 통로에서 조심스레 걸어오는 해리. 마치 누군가의 눈치를 보듯요. 그가 어디서 나왔죠? 코너에 가려져 잘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묘한 공허감에 시선은 정면으로, 거울을 쳐다봅니다.
당신의 시선으로 완성된 사치스럽고도 아름다워 눈길을 사로잡는 장식품들의 복제품이, 단정하고도 검은 양복, 눈에 확 띄지 않게 수수하고도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신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보가 덮인 하얀 테이블, 그 위의 네 송이 장미가 꽂힌 꽃병, 그리고 누군가가 앉아있다는 듯 뒤로 빠진 빈 두 개의 의자가 거울에 드러납니다.
나오미:(아직까지 여운이 남아 해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멍하니 거울을 쳐다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 야. 저 거울, 뭐야?
Harry Coleman:거울? (시선 끝을 따라 거울을 쳐다보았다. 자신과 나오미, 그 옆의 테이블과 멀리 지나다니는 사람들까지 크게 이상한 건 없어보인다. 뭐가 어떻냐는 듯 다시 널 돌아보았다.) 저게 왜?
나오미:이상한 게 없다고? (그럼 내가 본 건... 눈이라도 벅벅 문질러 보려 했으나, 화장을 했다는 걸 깨닫곤 손을 거두었다. 다시 작은 욕설이 입새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아냐. 됐어 그럼.
Harry Coleman:(실없긴. 어깨를 으쓱한다.) 답지않게 긴장이라도 한 거야? 결혼을 앞둔 소감은 어때. (긴장이라니, 그런 일은 전혀 없어보였지만 농담조로 묻는다.)
나오미:(네가 내려 놓은 와인잔을 집어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행복해 죽겠다. 왜. 너야말로...
...야. 근데 넌 진짜 불만 없냐?
아니, 너네 아버지도 그렇고 아까 그 시녀도 그렇고. 지네들 도련님 신부 될 사람 이름을 당일까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Harry Coleman:..내가 불만 가져서 어쩌게.
(눈썹을 늘어뜨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결혼식장이나, 턱시도와 드레스나, 반지 따위는 죄다 최고급으로 맞춰놓고 정작 결혼 당사자들은 병풍취급이라는게 우습지. 소믈리에 오프너를 들고는, 돌려서 능숙하게 코르크 마개를 따낸다. 이어 한 손으로 병의 아랫부분을 잡고는, 기울이자 붉은 액체가 투명한 유리병을 휘감으며 절반도 안되도록 채워진다. 그의 잔에도 같은 색의, 같은 양의 액체가 채워지고는 그가 병을 내려놓았다.)
하나하나 불만스러워선 이 집안에서 못 살아. 신부가 누군진 저 사람들한테 중요한건 아니거든.
나오미:집안을 뒤집어 엎든, 하다 못해 가출을 하든. 멍청아, 진작 나한테 말이라도 했으면... ... (말했으면. 어쩔 건데? 흔쾌히 돕기라도 했을까? 못돼 쳐먹은 자신이? 아니. 분명 귀찮다며 시큰둥해했을 것이다. 상대의 목숨이 제 손에 잡히자, 그의 삶 언저리에 발을 걸치자 쓸모없는 감상이 든 것 뿐이다. 그치만, 그래도. 해리의 초연한 듯한 대답에 기분이 썩어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네 인생도 참. 나만 개 같은 줄 알았더니.
Harry Coleman:(다른 사람도 아닌 나오미니, 걱정하는 것도 이 모양이지. 멍청이라든가 개같다든가 하는 소리가 이상하게 듣기 좋다. 제 취향을 의심해보기엔.. 누가 봐도 멋지잖아.)
말했으면, 도와줬을 거라 생각해볼게. (아닐 가능성이 배는 높다는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기대를 거는 건 제 맘이니 괜한 가정을 하며 웃었다.)
...그래, 결혼하면 뭐부터 하고 싶어? 돈 하난 썩어넘치는 귀족 부인이 되는건데 해보고 싶은 거라든가.
나오미:(결혼하면. 그런 가정이 의미가 있나? 평소처럼 사나우면서도 조금은 미묘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다가 이내 더 생각하기 싫은지 시선을 거두어 버렸다.)
가출. 이런 집구석에서 어떻게 사냐?
사랑하는 부인한테 집 한 채 정도는 사 줄 수 있지?
Harry Coleman:(분명 결혼 식장에서 할 소린 아니었다. 결국은 소리내 웃어버리지만.) 그럼. 사랑하는 부인한테 그렇돈 당연히 해줘야지.
다 버리면 나도 따라가도 돼? 너랑 살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 중에 제일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오미:(문득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결혼하자마자 집 나갈 거라는 신부를 왜 따라가느냐고. 배알도 없이. 그 신부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와 있는 줄 알고. 와인을 너무 빨리 들이킨 탓이라 치부하며 애써 상대를 바라보지 않았다.)
... 안 돼. 귀찮게 굴 거잖아.
Harry Coleman:그건.. 아닐거라 장담 못 하겠다.
그가 한숨 섞인 미소를 내리쉬곤, 무언가 말을 이으려 하며 와인이 절반 정도 남은 잔을 다시 제 입가로 가져다 대려던 찰나, 어디선가 여럿의 웃음소리가 다시금 들립니다.
그가 놀란 듯, 어쩌면 심기가 불편한 듯 그 쪽을 바라보고는, 잠시 아무 말이 없습니다.
표정이 곧 흐려지고는, 곧 무언가 생각한 듯,
Harry Coleman:이번엔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네, 그렇지만 이번에도 잠깐… 잠깐만, 기다려줄래?
……라는 말과 함께 그가 일어서서는, 어딘가로 향합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 ……무언가를 쫓아가듯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봅니다. 문득 거울에 비추었던 해리의 표정이 신경쓰입니다. 무언가를 감추듯, 불안해 보이던 그 표정이요.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온건가요?
…조금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죠. 시간은 충분하게 남아있고요. 연회장의 사람들은 놀라우리만치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뒤를 밟으며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오미:(와인을 한 번 더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척을 지운 채로 조심스럽게 뒤를 쫓는다.)
그가 연회장 바깥, 왼 쪽에서 들어왔던가요. 열린 문을 밀고 왼쪽으로 돌자니, 아차, 잠깐……! [행운 판정]
나오미:
운
기준치:
70/35/14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탁, 연회장으로 들어오던 직원과 어깨가 세게 맞부딪힙니다. 순간 직원이 중심을 잃더니, 손에 든 쟁반이 휘청입니다. 접시가 위태롭게 자리잡은 것이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아니, 떨어지고 있어요! ……이대로 접시가 깨진다면 해리가 뒤를 돌아볼지도 몰라요! [민첩판정]
나오미: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낙하하는 접시를 재빠르고도 익숙한 자세로 잡아냅니다. 바닥에 닿기 직전이었네요. 조금만 더 늦었다면 큰일날 뻔 했어요. 쟁반 위엔 냅킨, 포크와 나이프, 빈 와인잔 등이 제 위치를 잃은 채로 흐트러져 있습니다.
접시를 건네자면, “……아, 감사합니다.”직원은 그 말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그럼 다시 나가볼까요?
어둡고도 어두운 방. 음산한 찬 공기, 그리고 소름 돋도록 역한 냄새에 숨이 막혀옵니다. 문고리에 잠금장치가 있네요.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구조인 듯합니다.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질 무렵, 벽에 남아있는, 이미 떼어지고 없는 십자가를 붙였던 흔적이 보입니다. 과거에 이곳은 기도실이었던 걸까요? 주변을 둘러보자면 [옷더미], [금고], [서랍]이 보입니다.
나오미:(습관적으로 문을 잠근 후, 불쾌한 냄새에 미간을 잔뜩 구기며 옷더미부터 살핀다.)
흰 드레스, 예복 따위가 너덜너덜한 걸레짝처럼 한 곳에 무더기로 쌓여 있습니다. 자세히 보자면 옷마다 무언가로 잔뜩 얼룩이 진 채 딱딱하게 굳어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 얹어두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오미:(무언가를 숨겨 둔 건가? 드레스 자락을 걷어올리고 옷가지를 발로 휙휙 들어낸다.)
옷더미를 치워보자면, [톱], [시체] 한 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아.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익숙한 광경이다. 의외라면 예식장이라는 장소와 영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쯤. 놀라는 기색 없이 톱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크지는 않은, 녹이 슬었음에도 날카로움이 보이는 톱입니다. 이미 한 번 사용했다는 듯, 날에는 피가 잔뜩 말라붙어 있습니다.
나오미:(시체를 확인한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평범한 여성 의 시체입니다.
얼굴을 포함한 살이 드러난 모든 곳이 부패하고 뻣뻣하게 굳어있습니다. 벌레에게 파먹힌 듯,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손상되고 썩어들어간 것이 죽은 지 일주일은 된 것 같아요.
번뜩, 초점 없는 흐리고도 하얗게 썩어가는 눈이 당신을 쳐다보는 것만 같아 어쩐지 소름 돋습니다. [SAN 1/1D2+1]
나오미: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쯧... (언제 봐도 마뜩찮은 광경이긴 하나 동시에 익숙한 건 어쩔 수 없다. 무언가 특징적인 것이 없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복부에 작고도 깊게, 여러 번 찔린 상흔이 남아있어요. 비록 굳고 부패해가며 상흔이 온전치 않아 제대로는 볼 수 없지만, 명백한 칼의 상흔입니다. 찬찬히 살펴보자니, 시체의 왼쪽 손목이 절단되어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자른 듯, 썩은 살의 가운데로 희고도 얼룩진 뼈가 드러납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그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뭐죠? ……이 시체가 왜 여깄냐는 말이에요.
나오미:(왼 손목, 장소, 흰 예복. 가리키는 바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았다. 뭐지?)
(일단 금고로 시선을 돌린다.)
단단히 잠겨있는 다이얼 금고입니다. 풀어보기엔 비밀번호도 알 수 없고, 그 감조차 잡을 수 없네요. 무엇을 넣어둔 걸까요? [관찰 판정]
나오미:
Spot Hidde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째깍, 재깍. 무언가 맞물려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계라도 넣어둔 건가요?
나오미:(더 알 수 있는 건 없나?)
당장 눈에 띄는 점이나, 잠겨있는 금고를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어보입니다.
나오미:(서랍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desc 금고 옆에 있는 세 칸짜리 목재 서랍입니다. 오래되었는지 잘 맞물리지 않아 삐걱거리긴 하지만, 세 번째 칸을 제외하고는 잠겨있지 않습니다. [첫 번째 칸], [두 번째 칸], [세 번째 칸]을 볼 수 있습니다.
금고 옆에 있는 세 칸짜리 목재 서랍입니다. 오래되었는지 잘 맞물리지 않아 삐걱거리긴 하지만, 세 번째 칸을 제외하고는 잠겨있지 않습니다. [첫 번째 칸], [두 번째 칸], [세 번째 칸]을 볼 수 있습니다.
나오미:(첫번째 칸을 연다.)
살짝 손잡이를 뒤로 당기자 부드럽게만 열립니다. 스윽, 그 소리와 함께 열린 서랍의 첫 칸에는 날에 핏자국이 묻은 채 여러개로 조각난 칼의 파편, 그리고 잘린 손가락이 들어있습니다.
피가 나던 것을 그대로 넣었었는지 서랍의 바닥은 온통 거무스레한 자국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손가락의 절단면에는 마치 무언가를 하려던 듯 칼로 여러번 그은 자국, 그리고 조금 위를 보자면 눌린 듯한, 감겨 조인 듯한 자국이 나 있습니다.
나오미:...반지 자국? 저 시체 손가락인가.
(두번째 칸을 연다.)
손잡이를 뒤로 당기는 순간, 찌익, 하고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반쯤 열린 틈새 사이로 알 수 없는 언어가 가득 쓰인, 한눈에 봐도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 고문서가 서랍의 절반을 채웁니다. 쌓인 종이의 가운데가 무언가가 낀 듯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어요.
나오미:뭐야... (종이를 반 정도 들어내 본다.)
약간 녹슨 듯한 은색 열쇠가 있습니다.
나오미:(열쇠를 집어들고, 종이를 대강 살폈다.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나?)
낡고 헤진 종이에는 어려운 숫자들이 가득한 회계문서나, 공문서, 편지 따위가 보입니다. 당장에 신경쓸 만한 것들은 아닌 듯 합니다.
나오미:(종이를 내려놓고, 세번째 칸을 살핀다. 방금 얻은 열쇠로 열 수 있을까?)
잠금장치가 걸려 있습니다. 서랍 아래 바닥엔 조각으로 찢긴 채 구겨진 종이 뭉치가 떨어져 있네요. 종이는 구겨졌지만 꽤 빳빳합니다. 두 번째 칸에서 본 오래된 고문서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펴서 읽어보자면……
[의식이 이루어지는 날은 반드시 초승달이 뜨는 날이어야 할 것. 의식의 당일 제물을……]
이후는 찢어져서 보이지 않습니다. …의식이라니요? 초승달이라…… 그러고 보니 어젯밤엔 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바닥에 흩어진 종잇조각은 해리가 가지고 있던 것일까요?
방금 얻은 열쇠를 꽂으니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립니다. 서랍을 열자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것인지 약간의 먼지가 쌓여있고, 잔뜩 깨진 유리 조각이 바닥의 일부분을 메웁니다. [관찰 판정]
나오미:
Spot Hidde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어지럽게 놓인 날카로운 물건, 그 옆엔 무언가가 있던 자리였다는 듯 작은, 원형의 먼지가 쌓이지 않은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당신 손에 작고도 투명한, 원통형의 병이 잡힙니다.
……집힌 병의 그 차가운 온도를 느낍니다. 한 손에 거머쥘 수 있을 그 작은, 투명한 병. 코르크로 봉인된, 투명하고도 탁한 맑은 물과도 같은 내용물.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감이 말해주는 이 것은……
그래요, 분명…… 분명한 독약입니다. 그 사실과도 같을 생각을 되뇌자, 묘한 두근거림이 당신을 감쌉니다. 그 스산하고도 서늘한 병의, 생명의 온도. 이게 왜 여기 있죠?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 기회입니다. 큰 소란 없이, 큰 고통 없이 당신이 그를 죽일 기회. 기왕이면 암살이 좋겠죠. 지금이라면 아직 해리가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마침 앞에 다른 출구가 보입니다. 들어온 문은 다시금 직원이 지키고 있을지도 몰라요. 가지고 나갈까요?
나오미:(작은 병을 눈 앞에 가져다 대고, 흔들어 보기도 하자 내용물이 무엇인지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살생을 업으로 삼은 자신의 직감이 이것이 바로 기회라고 분명하게 가리켰다. 찰나였으나 망설이게 되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평소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겠지. 억지로 설득하며 병을 챙겨들었다.)
…끼익, 작은 소리와 함께 열린 문으로 쏟아지는 밝은 빛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시야에 비추어 보이는 것은 멀어져가는 해리의 부친, 그리고 연회장의 문입니다.
옆 방에 있을 그가 오기 전에, 어쩐지 미묘한 심정을 가지고는 다시금 연회장의 문을 엽니다.
연회장의 뒷문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 놓인 두 잔의 차마 비워지지 못한 와인잔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잔 옆, 그의 잔 속 피처럼 붉은 와인이 당신의 시선을 끕니다. 저 잔에 약을 흘려넣어, 당신의 일을 하는 거에요. 지금이라면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나오미?
나오미:아... 개 같네. 진짜.
(많은 부분에서 엉망진창인 자신이었으나, 업으로 삼은 이 일 만큼은 꽤 잘해왔다. 타겟에게 어줍잖은 감정을 가진 적도 없고, 일을 그르친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해리는... 그 놈은 좋으나 싫으나 내가 한 번 살린 목숨이잖아.)
(집안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굳이 내가 죽이지 않아도 목숨 간당간당한 건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꼭 지금이어야 하나? 짧지 않았던 갈등은 곧 억눌려 가라앉았다. 병의 마개를 열고, 와인잔 안에 흘려넣었다.)
(이게 나다. 난 이런 인간이지. 멋대로 내 인생에 끼어든 네 잘못이야.)
똑, 똑…… 주변의 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는, 온 신경이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는 것에 집중됩니다. 맑고도 투명한 방울이 붉게 동화되는 것을 바라봅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떨어지고는, 비어버린 병을 버리듯 떨어트립니다. 제 쓸모를 다한 병이 당신의 구두에 차여 테이블 밑 흰 보로 자취를 감춥니다.
아무 일 없던 척, 잔을 잡은 채로 테이블에 팔을 기대고 있자니,
Harry Coleman:미안, 기다렸지?
뒤에서 해리가 다가오고는 다시 제 자리에 앉습니다. 바라본 그의 눈가가 어쩐지 조금 붉습니다. 해리는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조금 돌려보입니다.
나오미:...울었냐? 너.
Harry Coleman:울긴 누가. (빤한 거짓말을 했다. 그냥 넘어가달란 양 미소지으며.)
해리가 와인잔을 들어보입니다. 들고는, 마시지 않고 바라보기만 합니다. 두어번 느릿하게 톡톡 두드리곤 흐르는 정적, 그리고 말을 꺼냅니다.
Harry Coleman:아, 그러고보니 시간이 얼마 안남았네.
뒤에서 직원이 다가옵니다. 순간, 해리가 와인잔을 든 손을 까딱 움직이더니,
……아, 부딪힐 것 같아요. 잠깐…!
……챙강, 손에서 미끄러진 와인잔이 투명하게 산산조각납니다. 수십개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립니다. 직원은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는, 해리는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입니다.
아, 쏟아지며 튄 붉은 와인의 자국이 치맛자락에 길게 자국을 남깁니다.
나오미:...
(안도했나? 평소였으면 호통을 치고도 남았을 일에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치마 한 번, 해리를 한 번 바라보곤 그저 입을 다물었다.)
Harry Coleman:..아.
BGM off
해리가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Harry Coleman:갈아입고 오는게 좋겠네.
뭐… 약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잘됐어. 옷은 대기실 옷장에 충분할테니, 더 예쁜 걸로 입고 와.
당신을 잡은 그 차가운 손에 가뜩이나 힘이 들어갑니다. 집요하게 당신의 약지손가락을 잡은 것이…… 당신의 반지를 빼앗으려는 듯 합니다. 기괴하게도 괴사한 손목의 잘린 단면에서 검붉은 피가 뚝, 뚝 떨어져 당신의 예복에 물듭니다.
거세고도 강한 힘. 그러나 어째서인지 당신 손의 반지는 빠지지가 않습니다. [SAN 0/1]
나오미:
SAN Roll
기준치:
68/34/13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미친... XX! 이거 뭐야? 안 놔? (힘껏 자신을 붙잡은 손을 떼어낸다.)
아, 아파요. 손의 반지를 빼려는 것이 아닌, 마치 당신의 약지의 관절을 뜯어내려는 것처럼 그 손아귀는 당신의 손가락을 으스러뜨리려 합니다.
아파, 그만……! 끊어지는 것 같이, 너무나도 아파요. 이대로 있다가는 당신의 왼손이 전부 조각조각 부서질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근력 판정]
나오미:
근력
기준치:
70/35/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통증이 손에, 그리고 머릿속에 가득 차 정신을 제대로 잡기 힘듭니다. 그 괴물과도 같은 손에 무게를 싣고는, 당신의 손이 창백해지는 것을 바라봅니다.
나오미:XX, 놓으라고! (급히 자신의 가방을 열어제끼더니 단도 하나를 꺼내 손 정중앙에 박아넣는다.)
인간의 것임에도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손 결국은 떨어집니다. 툭, 그대로 바닥으로 손목이 떨어지고는, 뼈와 살이 바닥과 맞닿는 소리, 그리고 끔찍하고도 역겨운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튑니다. 다시금 꿈틀거리고는 금방이라도 당신을 기어오를 듯 움직이다간 곧 추욱 늘어지고 맙니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끔찍한 손목을 봅니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아요. 그러고보니 그 강한 힘에도 반지는 어째선지 빠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힘으로 빼보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에 막혀서 빠지지 않는 듯, 아래로 잡아당겨지는 듯, 반지는 당신의 손에서 빠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손과 하나가 된 듯, 억지로 빼보려 하자면 통증만이 느껴집니다.
문득 신사의 말이 떠오릅니다. ‘증표’라던 반지. 그러나 해리의 손에도 있던, ‘증표’요. 그렇다면 무엇의? 신원불명의 평범한 사람만을 약혼자로 받아들이는 이 가문의 결혼식은 대체 무엇을 위해?
축하해주던 하객과 악단의 웨딩마치는 어디가고, 주변은 완전히 고요해 집니다. 비로소 결혼식의 주인공밖에 남지 않은 예식장. 철컥, 다시금 방아쇠를 당겨보더니 탄환이 없는 것을 알고 총을 바닥에 던지는 해리. 그 끝에서 빠져나온 칼날에 물든 붉은 선혈이 당신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엉망이 된 하얀 가든로즈 다발을 세게 쥔 해리의 손은 칼날을 쥔 탓에 피가 뚝, 뚝 흐릅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Harry Coleman:고마워,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훨씬…… 잘해주었네.
나오미:... 야.
처음부터 너였냐?
Harry Coleman:굳이 다른 사람을 고를 이유가 없잖아. 네 본업도 몰랐을까봐? 평판 좋던데. (긴장이 풀린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부케가 손에서 떨어진다.)
뭐.. 중간에 잠깐은 후회했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네. (뭐가 그리 재미난지 바람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나오미:미친 새끼... 너 죽여 달라고 네가 나를 찾아와? 내가 거절했으면. 안 왔으면...
(그딴 질문을 하기에는, 지금 이 자리에 온통 피칠갑을 한 흰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뻔뻔하게 자리했다. 곧 아랫입술을 짓씹는다.)
너한테 내가 어지간히 쓰레기긴 했나 보네.
Harry Coleman:믿음직스러웠던 거지. 너라면 잘 끝내줄 것 같아서.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마냥 네 표정을 빤히 보았다. 아니, 아마 정말로 마지막일 것이니. 입술을 씹는게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면 속도 없이 기분이 좋았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곧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될 테니.)
기억하고 있지? 내 의뢰 아직 안 끝났어.
두 번째 의뢰. 부탁했잖아, 날 죽여달라고……
단 한 발 남은 탄환. 쏘세요, 나오미. ……누구를?
나오미:... 하나만 묻자.
왜?
다 죽었잖아. 근데 너는 왜?
Harry Coleman:... (뜸을 들이다 무던한 투로입을 떼었다. )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신랑 쪽이 그럴싸하지?
물론 그럴 마음 없을 거 아는데.. 그래도 살릴 생각은 않는게 좋아, 같이 도망치는 건 그 순간부터 낭떠러지야. 저주가 무겁긴 하다더라.
...쉽네. 난 너 못 건드니까. 이런 상황이야 어릴 때부터 지겹게 견뎌 왔으니까 괜한 걱정은 말고.
나오미:... ... (긴 한숨에 섞인 노골적인 욕설이 흘러나왔다. 잔뜩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이마를 짚는다. 머릿속을 넘어 온몸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감정을 가다듬을 길이 없었다.)
아까는 네가 고용한 킬러가 아니라 친구로서, 물은 거였어.
이번엔 킬러로서 물을게.
날 믿냐?
Harry Coleman:뭐가 다른 건지 알 수가 없네.. (답지않게 말이 길어지도 고민하는 티가 빤한 꼴이, 지금껏 봐왔던 나오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 표정이, 나 때문에 나온단 거지. 작게 웃다 짧게 입맞췄다.)
맹세의 키스도 못했잖아. 신랑인데 이 정돈 괜찮지? (장난스럽게 웃고 말을 이었다.)
..한 순간도 널 믿지 않은 적이 없었어. 괜찮아. 네가 해왔던대로 하면 돼.
나오미:...하. (입술 위로 닿은 찰나의 온기에 놀라는 척도 하지 않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마음을 먹은 건지, 평소와 조금도 다름 없는 매서운 눈으로 해리를 바라보며, 리볼버를 장전한 후 방아쇠에 손을 걸고 머리를 겨누었다.)
나는 내가 쓰레기인 거 잘 알고 있었거든? 근데 너한테까지 쓰레기로 여겨지는 건... 와, 생각보다 훨씬 기분 개 같네.
Harry Coleman:왜 자꾸 그런식으로 생각해. 쓰레기라니.
(진심으로 화내는건가. 본업이 본업이면서 기분나빠하는게 영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름대로 인정하고 있단 건데 자랑스러워해야 하는거 아닌가. 저라고 네 속을 정확히 알 도리는 없으니 시덥잖은 생각은 금세 거두었다. 봐. 지금도 저런 눈이면서. 죽을 각오를 했으니 무서울 것도 없단 건지, 제 머리로 총구가 겨눠져도 여전히 입매를 휜다.)
사람 좀 죽인다고 쓰레기면 나도 쓰레기네. 왼 손 없는 시체, 봤지? (각자 떠올리는 바가 있을 테다. 조금이나마 가져줄지 모르겠는 네 죄책감을 덜어보려 하는 소린 아니었다. 그냥,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고 싶지 않았다.) 지금 기분 딱 좋아보이네. 여지껏 해왔던 일 중 제일 쉽지 않겠어.
나오미:... 끝까지. (원래 이런 이였나? 그래, 널 좋아하지 않는 것도 맞고. 죽이려 했던 것도 맞고. 지금까지 무수히 그래왔던 것도 맞다.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내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듯이, 자신에게도 쉽게 그럴 거라 생각하는 네 그 태연한 표정이 치가 떨린다. 모순적이게도.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당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탕-!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박힌 곳은... ... 해리의 이마가 아니라 하얀 벽이다.)
...잊었나 본데, 나는 널 이미 한 번 살렸어. 두 번이라고 못 할 것 같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 어떤지 모르겠네. 너도 이제 좀 개 같냐? (입가에 비뚜름하지만, 시원한 미소가 걸린다.)
Harry Coleman:... ...허, 아니. 됐거든.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늦었어. 이젠 안 죽어줄테니까.
도대체 당신은 왜, 나는 왜 죽어야만 하는 건가요. 부귀따위를 위해 무참히 이 사람을 살해하는 멍청한 짓은 여기서 끝내도록 해요. 총을, 결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총을 내려놓습니다.
한낱 부귀영화보다 더욱 이기적일, 지금은 그저 살아있고 싶습니다. 혼자서가 아닌, 둘이서요.
당신의 부탁을, 그 의뢰를 거절하고는, 손을 내밉니다. 그 손을 바라보더니, 울듯 웃으며 그 손을 잡습니다. 비로소 결혼식의 주인공에 맞는 표정입니다.
세상에서 행복을 바라지 않는 이는 없을테죠. 영원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는 일이죠. 당신도, 나도 언젠가는 죽을테죠. 하지만 그것이 지금이고 싶진 않아요.
Harry Coleman:……그래, 차라리 그럴까………
그러니 도망쳐요. 그래서, 도망치는 것입니다. 사실 죽고싶지 않았을, 당신도 죽이고싶지 않았을 그와 함께.
누구의 죽음도 아닙니다. 새하얬을, 붉은 버진로드를 걸어나갑니다. 당신 혼자가 아닌, 둘이서요. 여기저기 피에 물든 채로 쓰러진 시체 여럿을 구둣발로 밟고는, 그 길의 끝에서 웃어보입니다. 어쩐지 웃고싶은 기분이기에.
더없이 완벽한 결혼식입니다.
혐오스러울 사랑을 위한, 그 저주를 위한, 당신들의 영원을 위한, 속절없는 영원을 위한……
해리 생환?, 나오미 생환?
: 두 사람 모두 이 결혼식의 제물, 어쩌면 둘은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요. 당장 몇 시간 후일수도, 몇 년 후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서로의 손에 죽는 미래가 있을 수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은 신랑이, 신부가, 당신과 내가 행복해야할 날이니까요. 그렇게 프로포즈하는게 어딨나요? 다음에 할 거라면 반지는 조금 더 멋지게 건네주세요.